혈압이 높은 중년 남성은 리스크다.
쿠팡풀필먼트 인사 담당자가 보내온 문자. 5만원은 큰 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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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노매드랜드⟩와 뒤늦은 쿠팡 물류센터 알바 후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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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쿠팡에서 문자 메시지가 자주 왔다. 쿠폰 안내 메시지는 원래 많았다. 이번에는 다른 메시지다. (광고)일용모집(5만원 추가) … 본 홍보문자를 수신하시고 내일 00센터 풀타임 주간/오후 HUB 공정으로 출근하시는 분은 일급에서 50,000원 추가 지급합니다. 지난해 딱 하루 쿠팡 알바를 해봤다. 이후 구인 메시지가 종종 왔는데, 올여름에는 유독 잦다. 5만 원씩이나 추가 지급을 한다는 걸 보니 날이 더워 일하려는 사람들이 적은 것 같다. 돈 되는 일은 크게 가리지 않는 프리랜서의 입장에서 솔깃했다. 적어도 내가 겪은 그날 하루의 경험이 크게 나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신청해도 쿠팡은 받아주지 않을 것이다. 그럴 만한 사연이 있다.
퇴사를 결심했을 때, 나에게는 이런저런 계획이 있었다. 계획대로 진행되지 않으면 어떻게 하나, 란 질문이 생겼고 나는 일단 저축을 까먹는다고 답했다. 저축마저 사라지면 어떻게 할 건가, 라고 물었을 때는 "그때는 쿠팡이라도 가야지"라고 생각했다. 일종의 사회적 안전망이라고 할까. 친한 친구들 중에도 쿠팡 센터에서 소소한 생활비를 버는 이가 꽤 있었다. 퇴사 후 1년 6개월가량이 지났을 때쯤이었다. 써야 하는 원고도 다 써놓고 만들려고 했던 유튜브 영상도 편집을 끝냈던 그날, 쿠팡을 떠올렸다. 미리 하루라도 경험해 보는 게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나중에 정말 쿠팡 알바를 시작하게 된다면, 지금의 경험 덕분에 덜 막연할 것이다. 일이 할 만하다고 생각되면 다른 일이 없을 때마다 가서 돈을 벌면 된다. 이건 정말 사람이 할 일이 아니라고 판단되면 미리 다른 계획을 세울 수 있을 것이다. 게다가 근무 첫날은 오전에 교육을 받는데, 이 시간까지 포함해서 일당을 받는다. 안 할 이유가 없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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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펀치 앱을 다운받아 등록했다. 원하는 센터와 공정을 선택했다. 업무가 확정된 후에는 통근버스 탑승 위치를 등록했다. 버스는 센터로 가는 동안 몇 군데에 정차했다. 나중에는 더 이상 태울 수가 없을 정도로 사람이 가득했다. 버스 기사님은 타지 못한 사람들에게 "택시를 타고 가신 다음에 영수증으로 택시비를 청구하시라"고 안내했다. 하루짜리 방문객으로서 그들이 타고 갈 좌석을 차지한 것 같아 괜히 마음이 불편했다. 교육장에서는 이것저것 해야 하는 게 많았다. 건강 관련 문항에 체크하는 문서를 포함해 몇몇 서류에 서명했다. 혈압도 쟀다. 새벽에 일어난 데다 긴장한 탓인지 혈압이 높게 나왔다. 직원들은 나에게 조금 더 안정을 취한 후 다시 혈압을 체크해 달라고 요청했다. 안전교육, 성희롱 예방 교육, 공정 안내 영상을 보는 동안 나는 수시로 혈압을 체크했다. 그들을 안심시킬 정도로 수치가 내려가지 않은 듯했다. 결과적으로 그날 나는 상당히 수월한 공정에 배치됐다. 반품된 물건을 다시 진열하는 일이었다. 업무에 대한 간단한 교육을 받다 보니 점심시간이 되었다.
센터 안에는 두 곳의 직원식당이 있었다. 급식업체가 달랐기 때문에 메뉴도 달랐다. 그냥 줄을 덜 서도 되는 곳으로 향했다. 나는 일반적인 백반을 먹었는데, 다른 선택지도 있었다. 라면 메뉴를 선택한 사람이 있는가 하면 샌드위치와 우유를 먹는 사람도 있었다. 식사 후에는 비치된 냉장고에서 아이스크림을 꺼내 먹었다. 공짜였다. 그렇게 잠시 쉰 후 일을 시작했다. 일은 간단했다. 박스 몇 개를 카트에 올려 자리가 비어 있는 진열장으로 가져간다. PDA로 박스의 바코드를 찍는다. 박스에서 반품된 물건을 꺼낸 후 또 바코드를 찍는다. 진열장에 설치된 미니 박스의 바코드를 찍는다. 물건을 그 미니 박스에 넣는다. 그런 식으로 반품박스를 비우면 되는 일이었다. 현장을 안내하는 직원은 "혹시 너무 더우면 여기 냉장고에 얼음물이 있으니 그걸 드시면서 조금은 숨을 돌리셔도 된다"고 말했다. 일을 하는 동안 얼음물을 두 통 마셨다. 오전에 비가 내린 탓에 창고 내부에도 습도가 높았다. 몸에서 땀 냄새가 났고 다리가 아팠다. 오후 4시쯤이 되자 PDA를 통해 20분 휴식하라는 알림이 떴다. 날씨가 더울 때는 이렇게 전체 휴식 공지가 뜬다고 했다. 휴게실에는 에어컨이 비치되어 있었다. 휴식 후 다시 일을 하다 보니 업무 시간이 종료됐다. 빨리 나온 덕에 집으로 가는 버스를 일찍 탈 수 있었다. 다음 날 저녁, 일당이 입금됐다. 94,435원이었다.
사실 나는 며칠 더 일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인사 담당자는 다음 날 문자 메시지를 통해 혈압이 높게 나와 정확한 진단서를 제출해야만 업무 배정이 가능하다고 알려왔다. 나는 동네 가정의학과에서 별문제가 없다는 진단을 받은 후 진단서를 제출했는데, 이후로도 계속 업무 신청이 반려됐다. 최악의 상황에 대비해 내가 생각한 사회적 안전망의 실체를 확인하려고 한 것인데, 쿠팡이 리스크 관리를 위해 설계한 안전망에 내가 걸린 것이다. 지금 더 높은 일당을 약속하는 메시지가 오고 있지만, 또 반려될 가능성이 커 보인다. 개인정보 유출 사태에 이어 인천센터 화재까지, 쿠팡으로서는 안 그래도 욕먹어야 마땅한 일이 더 많아졌으니 더더욱 리스크를 최소화하려 할 것이다. 혈압이 높은 중년 남성은 리스크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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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로이 자오가 연출하고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출연한 영화 〈노매드랜드〉에는 아마존 물류센터가 나온다. 물론 이 영화는 아마존 노동자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영화는 도시의 경제 붕괴로 직장을 잃은 후 남편마저 병으로 잃은 주인공이 길 위에서 상실의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을 그린다. 초반부에 주인공 펀이 물류센터에서 일하는 장면이 나올 뿐이다. 센터에 출근해서 안전교육을 받고 물건을 포장한 후 동료들과 웃으며 점심 식사를 하는 모습이다. 펀은 캠핑장에 주차한 밴에서 생활을 하는데, 이 캠핑장 비용도 아마존이 지급하는 것으로 나온다. 실제 아마존에는 성수기에 캠핑장 비용을 내주면서 여행자들을 단기 채용하는 'CamperForce' 프로그램이 있다고 한다.
쿠팡 센터를 경험한 나는 이 영화에 나온 아마존 물류센터가 실제 센터라고 생각하지 못했다. 촬영 허가를 받았다는 것 자체가 믿기지 않았던 것이다. 쿠팡 창고에서는 개인 스마트폰을 소지할 수 없다. 창고로 들어갈 때나 나올 때나 공항 출국장에서 보던 기계를 통과하며 검색을 받아야 한다. 그런데 쿠팡이 벤치마킹한 아마존이 이 촬영을 허가해 주었다니. 찾아보니 촬영 허가를 위해 배우 프랜시스 맥도먼드가 직접 아마존 사업개발 부문 수석부사장에게 편지를 썼다고 한다. 영화를 보면 아마존은 꽤 만족했을 듯 보인다. 안전교육을 담당하는 직원은 친절하고 유쾌하다. 직원들의 점심시간은 자기 몸에 새긴 문신에 대한 잡담을 나눌 만큼 여유롭다. 영화의 주인공 펀은 여러 지역을 돌아다니며 다양한 사람과 만나다가 또다시 아마존 물류센터로 들어온다. 그녀처럼 유목민 생활을 하는 사람들에게 아마존은 언제든 돌아와서 돈을 벌 수 있는 곳으로 그려지고 있다.
어쩌면 아마존이 〈노매드랜드〉에 허락한 센터의 풍경이나 내가 경험한 쿠팡 센터의 풍경이 크게 다르지 않을 것 같다. 내가 일했던 그 시기는 쿠팡 물류센터 내에서 발생한 노동자 사망 사건이 연이어 보도될 때였다. 쿠팡이 책임을 회피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었으니, 쿠팡은 더 이상 책임질 일을 만들지 않으려고 애를 썼을 것이다. 그래서 얼음물도 가득 쟁여 놓고 중간에 추가 휴식 시간도 넣고, 혈압도 빡세게 체크했을 것이다. 일하다가 쓰러질 것 같은 사람은 일을 시키지 않는다. 일하다가 쓰러질 일도 만들지 않는다. 혹시 누군가 쓰러지거나 사망하더라도 우리는 갖춰야 할 것들을 다 갖춰놓고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을 만큼 갖춰 놓는다. 최악의 폭염이 온 이번 여름은 어떨까. 8월 5일 '한겨레' 보도에 따르면, 택배노조 쿠팡본부는 "전날 4일 서울 쿠팡 서초캠프, 송파캠프에서 일하던 노동자 2명이 쓰러졌다"며 "배송 마감시간을 손대지 않는다면 궁극적으로 사고를 막을 수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쿠팡은 올여름에도 더 많은 얼음물과 추가 휴식 시간을 마련했을 것이다. 갖춰 놓을 건 다 갖춰놓고 있었다고 주장할 수 있지만, 그것이 폭염에 대한 실질적인 대책은 될 수 없다.
내가 본 쿠팡 센터의 풍경은 그처럼 여러 사건 사고에 따라 필터링된 장면이었고, 그래서 나는 이곳에서 며칠 더 일해도 좋겠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직원들이 배려해 주는 것도 많고, 점심 식사도 나쁘지 않고, 아이스크림도 공짜고, 다음 날 저녁에 바로 일당이 입금되는 구조만을 경험한 덕분이다. 잠재적인 쿠팡 노동자로서 나는 쿠팡이 아마존처럼 촬영 허가를 내줄 수 있는 기업이 되었으면 좋겠다. 지금은 쿠팡이 촬영을 허가해도 욕만 먹을 것이다. 분명한 사죄와 보상, 그리고 노동자가 죽음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조건이 갖춰진 다음에야 〈노매드랜드〉처럼 서로가 좋은 협조가 가능할 것이다. 그렇게만 되면 "정 안 되면 쿠팡에라도 가야지"라고 생각하는 내 마음도 조금 더 편해질 것 같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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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평소에 쓰던 벨트를 하고 갔었다. 벨트가 나를 불편하게 할 줄은 몰랐다. 창고에 들어가고 나올 때마다 검색대를 통과해야 하는데, 그때마다 금속 버클이 문제였던 것이다. 벨트를 풀었다가 다시 착용하는 일을 반복했다. 그날 집에 와서 플라스틱 버클로 된 벨트를 주문했다. 하지만 이후에 이 벨트를 착용하고 쿠팡 센터에 가는 일은 없었다. 대신 지난 3월 뉴욕 여행을 갈 때 착용해서 공항 검색대를 편하게 통과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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