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가슴 속에 시 한 편은 품고 있어야 살 수 있다. ※ 이 글에는 영화 ‹가능한 사랑›의 스포일러가 많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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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의 미옥과 ‹시›의 미자는 원래 그런 사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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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가능한 사랑› 속 예지와 미옥의 어긋난 대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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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큐멘터리 감독 이예지(조여정)가 묻고 해고 노동자의 아내이자, 마스크 공장 직원인 안미옥(전도연)이 답한다. 장래희망이 뭐였어요? 미옥은 그런 게 없었다고 답한다. 예지는 “나는 어렸을 때부터 영화감독이 꿈이었다”고 말한다. 그 말을 들은 미옥은 어린 시절 몸이 아파 심장 소리를 들으며 누워 있던 그 날, 엄마가 세차장에서 일하며 호스로 물을 뿌리던 풍경을 이야기한다. 그 물줄기가 너무 예뻐 보여서 자기가 직접 물을 뿌려보았는데, 그걸 본 엄마가 와서 크게 혼을 냈다고. 아마도 엄마는 자기 딸도 그런 일을 하게 될까봐 화를 낸 것 같다고. ‹가능한 사랑›은 이때 미옥의 이야기를 재현해서 보여준다. 플래시백이다.
나는 이 장면이 여러모로 이상했다. (이 뉴스레터를 시작한 이후 처음으로 ‘이상한 장면’이란 타이틀에 걸맞는 이야기를 써본다.) 먼저 느낀 건 의문이었다. 이창동 감독의 영화에서 이런 직접적인 플래시백이 쓰인 적이 있었던가? ‹박하사탕›처럼 전체가 플래시백의 플래시백으로 이어지는 영화가 있다. 하지만 이 영화는 사건이 역순으로 배열되어 있다는 구조로 먼저 인식되기 때문에 ‹가능한 사랑›과 같은 ‘삽입형’ 플래시백처럼 보이지 않는다. 플래시백이 아닌데 플래시백처럼 느껴지는 장면은 있었다. ‹초록물고기›에서 막동은 나이트클럽 화장실에서 김양길(명계남)을 죽인 후 공중전화로 집에 전화를 걸어 형과 대화한다. 막동이는 어린 시절 함께 물가에서 놀면서 초록물고기를 봤던 일화를 이야기한다. 그 순간 막동이의 표정과 목소리를 통해 관객도 그 시절에 대한 그리움을 함께 느낀다. 하지만 이 장면 또한 직접적인 플래시백은 아니다. 그러니까 이창동 감독은 ‹가능한 사랑›에서 이전에는 거의 써본 적이 없던 형식을 시도하고 있는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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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장면이 이상해 보인 또 다른 이유는 그들의 대화가 어긋나 있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어린 시절의 장래희망을 물었는데, 미옥은 없다고 답했다. 예지가 자신이 어렸을 때부터 영화감독을 꿈꾸었다고 말하자, 미옥은 그에 대한 일종의 맞장구로서 세차장 물줄기에 대한 기억을 이야기한다. 이게 맞장구가 되는 대화인가? 저쪽이 무엇이 되고 싶었다고 말하면 이쪽은 사실 나도 무엇을 꿈꾼 적은 있다는 정도로는 답을 하는 게 대화 아닌가. 만약 예지가 그날 찍은 영상을 자신의 다큐멘터리에 넣으려고 한다면, 자신의 목소리는 지우고 자막을 붙였을 것이다. “특별히 아름다운 순간으로 떠오르는 어린 시절의 기억이 있나요?” 정도? 그런데 이 둘의 인터뷰가 어긋나는 건 이 대화만이 아니다. 남편 호석을 어떻게 만났냐는 질문에 미옥은 16살 때 친구들과 과수원에 놀러가서 만났던 에피소드를 들려준다. 이 에피소드는 그때의 호석이 수차례 문질러서 반질반질해진 청사과를 건네주었다는 이야기로 끝나도 된다. 그런데 미옥은 그 다음날 새벽, 호석이 준 사과가 떠올라 잠에서 깬 후 시골길을 걷다가 마주한 풍경에 대해서까지 이야기한다. “내가 다른 사람이 된 것 같고, 아예 다른 세상이 된 것 같았어요.” 호석과 어떻게 결혼하게 되었냐는 질문에 미옥이 들려주는 이야기의 구성도 비슷하다. 그녀는 휴가 나온 군인과 봉제 공장 직원으로 재회했다는 것에서 끝나지 않고 그날 달려간 월미도에서 밤새 바라본 보름달까지 이야기한다. 예지는 어떤 스토리를 기대하고 묻는데, 미옥은 그때마다 자신이 기억하고 있는 아름다운 풍경의 이미지를 설명하는 것이다. 그리고 ‹가능한 사랑›은 그때마다 그녀가 보았던 풍경을 플래시백으로 보여준다. 관객도 그녀가 기억하고 있는 풍경을 함께 봐야만 한다는 의도처럼 보인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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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옥은 매우 적극적인 ‘인터뷰이(Interviewee)’다. 그녀는 단답형 질문에서 시간, 장소, 풍경, 감정을 놓치지 않고 말해준다. 예지의 입장에서는 기대하지 않았던 부분이었을 것이다. 이런 것까지 말해준다고? 대박! 그런데 나는 그녀가 준비된 ‘인터뷰이’처럼 보였다. 미옥은 지금까지 살면서 그런 아름다운 기억들을 놓치지 않고 자주 떠올리며 살았을 것이다. 그것에 더해 아름다운 기억들을 많이 남기고 살았을 것 같다. 옥쇄파업 현장에서도 하나둘씩 파업 대열에 참여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면서 감동을 느끼고 많은 노동자의 아이들을 보살피면서도 “마을 축제 같은” 행복을 느꼈을 것이다. 다시 말해 미옥은 원래 그런 사람이다. 아름다움을 느끼고 간직할 수 있는 사람. 다만 그녀는 예지를 만나기 전에는 그런 아름다운 기억을 말해본 적이 없는 사람이다. 두 사람의 질문과 답이 어딘가 어긋나 있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생각했다. 예지는 이야기를 듣고 싶은데, 그 순간 미옥은 그때 경험한 아름다운 풍경에 빠져든다. 말하자면 혼자만의 영화. 그녀는 이 영화의 작가이고 연출자이고 주인공이다. 그리고 미옥은 이 영화를 끝낼 생각이 없다.
미옥은 아들 철이의 학교에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남편이 과거에 받았던 대기업 신분증을 꺼내보인다. 센스 있게 준비한 소품이다. 예지에게 잘 보이고 싶은 마음도 있었겠지만, 나는 미옥이 스스로 이 다큐의 실질적인 연출자이자 주인공이고 싶어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녀의 욕망은 예지의 촬영팀이 마스크 공장에 왔을 때 더 커진다. 일하는 모습이 단조로워 별로 찍을 게 없다고 하자 미옥은 “그럼 내가 노조라도 만들까?”라며 바로 사장과 담판을 짓는다. 그리고는 노조 창립총회까지 열어버린다. 이렇게 쉬운 걸 왜 그 이전에는 못했던 걸까. 그녀는 이미 노동조합을 만드는 과정에 대해 알고 있던 사람인데 말이다. 모든 게 예지의 카메라 때문이다.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에 미옥은 연출자이자 주인공이 되고 싶었다. 카메라가 있었기 때문에 공장 사장도 쉽게 거부 못할 거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카메라가 바라보는 상황에서 노조 창립자가 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녀는 자신이 앞으로도 이 영화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 것이란 믿음과 확신으로 예지의 카메라 앞에 선다. 자기네 별장에서 함께 휴가를 보내자는 예지의 제안을 받아들인 데에도 그런 자신감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별장에서 그녀의 믿음과 확신은 무참히 붕괴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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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새벽, 미옥은 남편 호석의 고통을 보게 되는데 차마 다가가지 못하고 돌아선다. 그런데 그때 예지의 카메라가 자신을 찍고 있던 걸 발견한다. 이 영화의 주인공과 연출자가 처음부터 자신이 아니었다는 걸, 깨닫는 순간이다. 게다가 이 시퀀스에서 ‹가능한 사랑›은 미옥이 아름다운 기억을 꺼내서 만들고 있던 혼자만의 영화까지 부숴버린다. 이날 이후 미옥에게 ‘새벽’은 세상의 아름다움을 경험시켜 준 충만한 시간이 될 수 없기 때문이다. 내가 몰랐던 남편의 고통을 알게 되고 내가 확신했던 믿음이 무너진 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세차장의 아름다운 물줄기도, 호석과 바라보았던 월미도의 보름달도 이 별장에서 다른 영화가 되어버린다. ‹가능한 사랑›에 플래시백이 필요했던 이유는 그처럼 아름다운 기억이 고통스러운 현재가 되어버린 현실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 같다.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는 사람은 고통도 고스란히 간직할 수밖에 없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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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능한 사랑›의 미옥을 보면서 어쩔 수 없이 ‹시›의 미자(윤정희)가 떠올랐다. “꽃도 좋아하고 이상한 소리도 잘하는” 미자는 어느 날, 지역 문화원의 문학교실 포스터를 보고는 “50년 전, 학교 선생님이 너 커서 시인되겠다”고 했던 말을 떠올리고 시를 배우기로 한다. 김용택 시인이 연기한 문학강사는 “시를 쓰는 건 아름다움을 찾는 일”이라며 “세상을 알고 싶고 이해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봐야만 시상이 떠오른다”고 말한다. 미자는 설거지 통, 냉장고, 집 앞에 심어진 나무들을 바라보며 아름다움을 찾는다. 그녀 또한 미옥처럼 아름다움을 느끼고 간직할 수 있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문학교실 수강생들이 각자 기억하는 아름다운 순간을 이야기하는 상황에서 미자가 하는 이야기도 미옥의 기억과 많이 닮았다. “마루에는 붉은 커튼이 쳐져 있고 커튼이 조금 열려 있는 상태에서 햇볕이 비춰들어오고 언니 얼굴이 반쯤 보여요. 저한테 예쁜 옷을 입혀 줬나 봐요. ‘미자야. 이리 와, 얼른 와’ 이러면서 손뼉치고 저는 뒤뚱거리면서 가고… 어린 생각에도 굉장히 기분이 좋았고 너무 행복하고 “내가 정말 예쁘구나”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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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시› 또한 시인이 되고 싶은 미자가 시를 쓸 수 없는 상황에 빠지는 이야기였다. 알츠하이머로 언어를 잃고 있는 와중에 그녀는 손자가 끔찍한 사건의 가해자가 되었다는 걸 알게 된다. 그녀에게는 시를 쓸 수 있는 단어도 없고 염치도 없다. 그래서 미자는 결국 죽은 아이를 위한 한 편의 시를 남기고 사라진다.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시를 쓰기 시작했는데, 결국 죄에 관한 시를 남길 수밖에 없는 비극. 미옥 역시 세상이 자신의 바람만큼 아름답지 않다는 자각에 의해 주인공의 자리를 내려놓는다는 점에서 아름다움에 대한 두 여자의 현실은 닮았다. 그래도 미자와 달리 미옥은 앞으로도 자신만의 영화를 간직할 듯 보인다. 그녀에게 보름달은 이제 월미도에서 보았던 보름달과 함께 남편과 마당 테이블에 앉아 콘칩에 소주를 마시며 바라보았던 보름달로 기억될 것이다. ‹시›의 미자를 생각해보니 ‹가능한 사랑›이 플래시백을 필요로 한 실질적인 이유는 현실의 고통을 더 뼈저리게 느끼게 만드는 데 그치지 않는 것 같다. 어쨌든 앞으로 살아가야 하는 사람에게는 그런 아름다운 기억이 필요하다. 관객인 나도 미옥의 보름달을 보았기 때문에 마지막 장면의 보름달을 아름답게 기억할 수 있을 것이다. 누구나 가슴 속에 시 한 편은 품고 있어야 살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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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여러분은 사과를 진짜로 본 게 아니에요. 사과라는 것을 정말 알고 싶어서, 관심을 갖고 이해하고 싶어서, 대화하고 싶어서 보는 것이 진짜로 보는 거예요.” ‹시›에서 미자가 듣는 문학교실의 강사는 이렇게 말한다. 그날 이후 미자는 많은 것에 관심과 대화를 청한다. 식탁에 놓여 있던 사과가 첫 대상이다. ‹가능한 사랑›에서 호석도 미옥에 대한 관심을 갖고, 그녀를 더 알고 싶어서 익지도 않은 사과를 건넸을 것이다. 이토록 애틋한 과일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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