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해 본 적 없는 숫자다. LG 트윈스 투수 임찬규의 통산 100승을 축하하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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LG 트윈스 투수 임찬규가 통산 100승을 기록했다. 상상해 본 적 없는 숫자다. 임찬규 때문에 야구를 보았고, LG팬이 되었고, 그래서 야구팬이 된 나한테도 그런 숫자다. 야구팬은 사랑만큼 의심도 많다. 사랑한 시간만큼 배신당한 세월이 길었던 LG팬은 유독 그렇다. 임찬규를 사랑하지 않는 LG팬이 없겠지만, 그가 이 팀의 레전드 선수가 될 거라고 확신했던 팬도 없을 것이다. 선발투수인데 5이닝 넘기는 날이 거의 없었고, 언제나 유쾌했지만 마운드에서는 자주 멘탈이 털렸던 선수라서 그렇다. 그랬던 임찬규가 통산 100승이라니. 게다가 LG 트윈스 창단 이후 최초라니. 생각하면 할수록 울컥했다.
임찬규란 야구선수를 처음 알게 된 건 2013년이었다. 그에게서 강한 인상을 받았던 이유는 2012년의 나에게 벌어진 일들 때문이었다. 2012년은 격동의 해였다. 아버지가 돌아가셨고, 여자 친구는 유학을 떠났고(지금도 만나고 있다), 이직을 했다. 변화에 변화가 수도 없이 겹치는 터라, 나는 무너지고 있던 멘탈을 의식할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이직까지 했더니, 진짜 '멘붕'이 왔다. 전 직장은 영화전문지였고, 이직한 매체는 여성 패션지였다. 새로운 차원으로의 이동은 나에게 실존적인 고민을 안겼다. 나는 누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내가 잘해왔던 건 무엇이고, 못하는 건 무엇이었던가. 집에만 오면 기절하듯 누워 밝아오는 내일을 두려워했다. 할 수 있겠나. 이대로 계속 할 수 있겠나. 그런 나에게 LG팬인 친구가 '야구'를 꺼냈다. "LG에 임찬규라는 투수가 있어." 그래서 듣게 된 그날의 비극. "경기 시작 전, 고양이가 그라운드에 난입했던 날이었어. 에이스 투수인 주키치가 5연속 삼진을 잡아 주었지. 점수는 4:1. 그러다 9회 1사 1루일 때, 임찬규가 등판한 거야. 그해 임찬규는 신인왕 후보였어. 그런데 5연속 볼넷을 내주었지. LG는 역전패를 당했어. 그때까지 LG는 1, 2위를 오가고 있었는데, 이 경기를 기점으로 하락해 결국 7등으로 그해를 마감했어. 그날 선수 대기실 구석에서 임찬규가 울고 있었대. TV에서는 그날 경기의 하이라이트가 방송 중이었는데, 이병규가 임찬규를 TV 정중앙에 앉으라고 했대. 임찬규가 망가지는 걸 스스로 지켜보게 한 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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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이 날 뻔했다. 씩씩함으로 사랑받던 어린 투수가 멘탈 붕괴에 허우적댄 사연에 깊이 공감했다. 충분히 빠른 공을 제대로 꽂아 넣을 수 있었던 임찬규는 그날 자기가 할 수 있는 것도 못해 버렸다. 그 이야기를 듣던 그때의 내가 딱 그랬다. 임찬규를, 그리고 LG를 응원해 보고 싶었다. LG가 살아난다면 나도 기운을 얻을 것 같았다. 친구는 각오를 단단히 하라고 했다. "LG가 어떤 팀인 줄 알아? 지난 10년간, 한 번도 가을야구를 못했다고. 매년 올해는 다르다고 하면서도, 결국에는 예년과 다를 게 없던 팀이야." 주위의 야구팬들 또한 내가 야구 때문에 상처받기를 원하지 않았다. "왜 이런 자학과 고통의 세계로 들어오려고 해요?" 그들이 나를 정말 진심으로 생각했다는 걸 깨닫기까지는 1년이 채 걸리지 않았다. 2년이 지나자, LG 트윈스는 애증의 대상이 됐다. 임찬규를 욕하기도 했을 것이다. 그래도 임찬규를 딱하게 보는 마음이 더 컸다. 점수를 내주고 강판되어도 '아, 이 녀석 좀 잘해보지'란 마음이었고, 어쩌다가 잘하는 날에는 크게 기뻐하면서도 다음 등판을 염려했다. 그렇게 10년이 지났다. 나도 버텼고 임찬규도 버텼다.
2023년 12월, 임찬규는 LG 트윈스와 FA 계약을 했다. 계약 전 팬들 사이에서는 여전히 사랑받지만 여전히 의심스러운 그에게 얼마를 주어야 하는가를 놓고 많은 이야기가 있었다. 그해 30경기에 나가 14승을 해서 국내 투수 중 최고 기록을 썼는데도 그랬다. 나는 얼마를 주든지 무조건 계약을 해야 한다는 쪽이었다. "임찬규가 다른 팀 가면 LG 타자들을 상대해야 할 거 아냐. 그런데 임찬규가 지금 LG 타자들 막아낼 수는 있겠냐. 분명 털려 버릴 거라고. LG에서 털리면 그래도 우리 새끼라고 우쭈쭈 하는데, 다른 팀 가서 그래 봐. 엄청나게 욕먹을 텐데, 내가 그 꼴을 어떻게 봐." 이런 대화를 유튜브 브이로그로 올렸는데, 다른 팀 팬들이 찾아와 "역시 LG팬들은 냉정하지 못하다"는 댓글을 달았다. 이런 야알못들. 그렇게 냉정해질 거면 야구를 왜 보나. 임찬규는 2024 시즌에 10승을 했고, 2025 시즌에는 데뷔 첫 완봉승을 포함해 11승을 했다. 임찬규는 냉정하지 못한 팬들에게 크게 보답하는 중이다. 그 사이 나는 퇴사했고, 새로운 길을 모색하는 중이다. 2026 시즌 현재는 또 14승을 기록 중인 임찬규를 보면서 다시 한번 영감을 얻는다. 지금의 나는 누구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내가 잘해왔던 건 무엇이고, 앞으로도 잘할 수 있는 건 무엇인가. 임찬규도 나도 더 버텨낼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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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하게도 나는 임찬규가 LG 트윈스의 영구결번 선수가 되면 좋겠다. LG와 4년 FA 계약을 한 번 더 하고 통산 130승 정도를 기록하면 되지 않으려나. 하지만 현실적으로 그가 영구결번 선수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다. 노송 김용수의 통산 126승을 넘어서고 한국시리즈에서 팀을 승리로 이끄는 인생 경기를 몇 차례는 보여줘야 논의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게 불가능한 미래라면, 임찬규가 영구결번이 아닌 '영구 마스코트'로라도 LG 트윈스와 함께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찬규의 얼굴을 본떠 만든 마스코트에 '당찬규'란 이름을 붙여 주고, 현재 마스코트인 럭키, 스타와 함께 구장을 누비도록 하는 것이다. 평소 파이팅 넘치는 기운과 유쾌한 모습도 마스코트에 어울리고, 왠지 임찬규도 거부하지 않을 것 같다. 다행히 기존의 럭키와 스타가 동물 캐릭터가 아닌 데다가 임찬규와도 얼굴합이 어울리게 생겼기 때문에 위화감이 없을 것 같다. LG 트윈스가 캐릭터 사용에 대한 대가를 지불해야겠지만, 어차피 지금도 각종 캐릭터와 서브 마스코트 계약을 하고 있지 않은가. 팬들은 그 캐릭터보다 당찬규를 더 사랑할 게 분명하다. 마스코트 선배인 럭키와 스타가 갈구면 갈굼당하다가도, 가끔씩 그들을 골탕 먹이는 기믹을 보여 주면 좋겠다. 그렇게라도 오래 보고 싶은 마음이다. 적어도 내가 야구를 보는 동안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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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사키(SSK) 프로브레인(Probrain) 투수 글러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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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사회인 야구를 했었다. 나도 여러 글러브를 사 모았다. 그래도 투수 글러브까지 사는 건 오버라고 생각했다. 내가 마운드에 올라갈 일은 없을 게 분명했다. 그런데 우리 팀에 있던 선수 출신 친구가 갖고 있던 글러브들을 내놓았다. 중고 사이트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라 주저 없이 샀다. 이 글러브를 끼고 캐치볼을 할 때마다 임찬규의 폼을 떠올렸다. 다른 글러브들은 누구에게 주어도 아쉽지 않지만, 이것만은 평생 가져갈 생각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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