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조깅을 한 지 1년이 지났다. 몸이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다. 달라졌다고 느낀 순간은 있었다. 처음 달렸을 때 애플워치에 찍힌 페이스는 1km당 약 11분이었다. 산책하던 할머니들이 나를 앞질러 갔다. 첫날 1km, 둘째 날 2km, 셋째 날 2.5km, 다섯째 날 3km를 달렸다. 열흘쯤 지나자 9분 페이스가 나왔다. 한동안 3km만 달렸다. 페이스가 8분대에 들어서자 5km에 도전했다. 평소보다 천천히, 대신 오래 달리기로 했다. 8분대와 9분대를 오가는 날이 이어졌다. 어느 날 가을이 왔다. 신나게 달렸다. 페이스가 7분대로 들어섰다. 이제 어디 가서 슬로우 조깅을 한다고 말해도 되겠다 싶었다. 얼마 뒤 6분대를 찍었다. 오랜만에 만난 지인들이 살이 빠졌다고 했다. 신이 났다. 러닝을 진지하게 즐기는 후배가 말했다. "이제 거리를 늘려 보세요. 평소 속도로 조금씩 늘리면 더 빨라질 거예요." 7km에 도전했다. 힘들었지만 정말 되는구나 싶어 즐거웠다. 사흘 뒤, 무릎에 통증이 찾아왔다.
무엇보다 달리는 시간을 좋아하게 됐다. 어려서부터 달리기를 싫어했다. 못하니까 싫었다. 나보다 잘 달리는 친구가 많아서 못한다고 믿었다. 달리기를 좋아하는 방법은 간단했다. 혼자 달리면 된다. 음악이나 팟캐스트를 들으며 달려도 즐겁고, 아무 생각 없이 달려도 끝나고 나면 좋은 시간이었다는 느낌이 남는다. 이제는 여행 가방에 러닝화를 챙긴다. 낯선 곳에서는 아무것도 듣지 않고 풍경을 구경하며 달린다. 부산 송정해수욕장, 삿포로 나카지마 공원, 뉴욕 센트럴 파크를 그렇게 달렸다. 달리는 시간이 좋은 진짜 이유는 무언가를 꾸준히 한다는 감각에 있다. 하루를 허비한 듯한 날에도 '뭐 어때? 오늘도 달렸잖아' 하며 안심한다.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사는 나에게는 그 안심이 중요하다.
1년쯤 달려 보니 알겠다. 달리기는 몸의 속도와 마음의 속도가 맞을 때 가장 즐겁다. 몸이 더 빠르면 쉽게 지치고, 마음이 더 빠르면 답답하다. 남과 경쟁하며 달리면 더 힘든 이유도 여기 있다. 마음은 경쟁자만큼 빠른데 몸이 그보다 느리면, 몸도 마음도 아프다. 함께 달리기를 시작한 친구가 10년 안에 도쿄 마라톤에 나가자고 했다. 상상만 해도 싫었다. 나는 그가 마라톤을 뛰는 동안 스미다강 변을 슬로우 조깅하며 쉬다가, 대회를 마친 그와 맥주를 마시면 충분하다. 그때까지 통증 없이 달리고 싶다.
포카리스웨트 340ml
지난여름, 달리기를 끝내고 포카리스웨트를 마시는 순간이 가장 즐거웠다. 250ml 작은 캔은 1,700원, 340ml 뚱캔은 1,900원, 620ml 페트는 2,600원이다. 내게는 뚱캔 하나가 딱 알맞았다. 뚱캔을 파는 편의점이 드물어서, 멈추고 싶은 날에도 응암역 근처 GS25까지 달리곤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