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뉴스레터도 결국 새로 산 안경 같은 것이다. 모스콧 렘토쉬 블랙 49mm. 큰 돈을 쓸 때는 많이 사랑받는 모델을 선택해야 나중에 후회가 없다. |
|
|
〈브로드웨이를 쏴라〉와 새로운 안경, 그리고 뉴스레터 |
|
|
새로운 안경을 샀다. 두께감이 있는 검은색 뿔테 안경이다. 충동구매였다. 몇 개월 전 이미 원래 쓰던 안경의 렌즈를 교체했다. 다초점 렌즈라 비쌌다. 안경사님은 "이제 곧 렌즈에만 100만원을 쓰는 때가 온다"며 악담(?)을 했다. 그래도 시착으로 경험한 선명한 세상에 반해 돈을 썼다. 그런데도 안경을 또 산 거다. 여자친구의 안경을 같이 보러 갔다가 무심코 써본 탓이었다. 그걸 쓴 내 모습이 갑자기 잘생겨 보였던 건 아니다. 다만 너무 낯설었다.
고등학교 2학년이던 1995년 가을부터 안경을 썼다. 칠판 글씨가 흐릿하게 보여 검사를 받았더니 난시였다. 이후 다양한 디자인의 안경을 썼다. 뿔테도 있었다. 오래 쓰지는 못했다. 영화를 보고 글을 쓰며 일하다 보니 안경 무게까지 신경 쓰였다. 더 가벼운 안경을 찾았고, 약 10년 전 지금의 안경에 정착했다. 세 번쯤 렌즈를 교체했고 다리팁도 한 번 수리했다. 그렇게 얇은 테와 작은 렌즈를 걸친 내 얼굴은 나에게나 남에게나 '정착된' 내가 되었다. 그런데 두꺼운 뿔테 안경을 쓰고 거울로 본 나는 내가 알던 내가 아니었다.
프레임 가격만 48만원, 렌즈 포함 60만원이었다. 프리랜서 입장에서 부담스러운 가격이었지만, 나는 스스로 합리화할 수 있었다. 이건 정말 가성비 높은 소비였다. 어제와 다른 내가 되려면 꼭 해야만 하는 것이 있다. 빡센 운동과 식단으로 다이어트를 하거나, 눈밑 지방 재배치를 하거나, 옷을 사거나, 염색을 하거나. 변신은 그 모든 걸 완수해야만 가능하다. 그런데 60만원짜리 안경을 사면 단번에 끝낼 수 있다. 어차피 다초점 렌즈를 낀, 부정할 수 없는 중년이다. 적어도 집 밖에서만큼은 과거와 다른 모습으로 가장해 살아보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마침 그때 코스피는 아직 8500대였다.
|
|
|
〈브로드웨이를 쏴라〉(Bullets Over Broadway, 1994) |
|
|
#.2 〈브로드웨이를 쏴라〉(1994)의 존 쿠삭 |
|
|
돌이켜보면 안경을 살 때마다 새로운 사람처럼 보이고 싶었던 것 같다. 아니면 누군가처럼 보이고 싶다는 욕망이 있었을 거다. 어떤 때는 지적인 사람처럼, 어떤 때는 위트 있는 사람처럼, 또 어떤 때는 부드러운 사람처럼. 남들도 그렇게 봐줬는지는 알 수 없지만, 최소한 그 안경을 쓸 때마다 다른 사람이 되려고 의식했다. 슈퍼맨도 클라크 켄트처럼 보이고 싶을 때는 뿔테안경을 쓰는 거니까. 하지만 가질 수 없어서 되지 못했던, 안경 쓴 사람이 한 명 있었다. 우디 앨런의 1994년 작 〈브로드웨이를 쏴라〉에서 존 쿠삭이 연기한 데이비드 셰인이다.
데이비드의 직업은 극작가다. 그는 깡패 두목에게 공연 자금을 지원받으며 그의 정부를 주인공으로 캐스팅하라는 조건을 받아들인다. 상황은 점점 악화되고, 데이비드는 더 좋은 아이디어를 강구하지만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한다. 이때 깡패 정부의 보디가드(역시 깡패다)가 상당히 쓸 만한 이야기를 던져준다. 이때부터 영화는 극작가와 배우들이 막힐 때마다 나타나 냉철하게 문제를 파악하고 뛰어난 대안을 제시하는 깡패의 활약상을 보여준다. 매우 재미있는 작품인데, 이 영화를 극장에서 보던 열아홉 살의 나에게 가장 눈에 띈 건, 존 쿠삭이 쓰고 나온 안경이었다.
1920년대에나 쓸 법한 디자인의 이 안경은 딱 글만 쓸 줄 아는 남자에게 어울려 보인다. 이 안경의 진가는 벗을 때 드러난다. 영화에서 존 쿠삭은 안경을 수시로 벗었다가 다시 쓴다. 얼굴 앞으로 빼내는 게 아니라, 안경을 한 손으로 잡은 후 얼굴 왼쪽으로 돌려 벗겨낸다. 이때 그의 안경 다리는 거의 180도 이상으로 휘어졌다가 완벽하게 복원됐다. 놀라웠다. 안경이 저렇게 휘어도 괜찮은 건지 걱정했고, 아무렇지 않게 복원되는 모습에 감탄했다. 그때의 나는, 다음에 안경을 새로 산다면 꼭 저런 안경을 사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결국 비슷한 안경을 산 적은 없다. 딱 한 번 영화에서 본 것과 가까운 탄성의 안경을 본 적이 있었는데, 너무 비쌌다.
|
|
|
〈브로드웨이를 쏴라〉(Bullets Over Broadway, 1994) |
|
|
영화에서 안경은 글 쓰는 주인공에게 관성적으로 씌우는 소품이다. 이 영화에서도 마찬가지다. 깡패들은 안경을 쓰지 않지만, 그들에게 둘러싸인 주인공만 안경을 쓰고 있다. 그런데 이 영화는 그토록 자신만의 예술을 추구하던 극작가가 결국 예술을 포기하는 이야기다. 자신보다 뛰어난 재능을 보이는 깡패, 그리고 위선으로 가득한 브로드웨이에서 길을 잃은 주인공은 결국 자신에게 재능이 없다는 걸 인정한다. 그리고 예술을 포기한 대신 진정한 사랑을 찾는다. 그가 안경을 벗어던지며 활짝 웃는 장면은 없지만, 사실상 그는 안경을 벗고 자유를 만끽한 셈이다.
새 안경을 사놓고 〈브로드웨이를 쏴라〉의 데이비드를 떠올려보니, 나도 그런 자유를 찾을 수 있을지 생각하게 된다. 그와 비교하면 나는 진정한 예술을 꿈꾼 적도 없지만, 여전히 글 쓰는 일을 놓지 못하는 중이다. 프리랜서 생활을 시작하면서 장기적인 밑그림을 그리고 단기적 계획을 수행해왔지만 솔직히 언제나 초조하다. 인생을 아예 다른 방향으로 틀어볼까 고민하다가도 결국엔 다시 글을 쓰고, 글을 쓰면서도 이게 합리적인 길인지 의심하는 생활을 반복하는 중이다. 그나마 다행인 건, 데이비드처럼 자신의 재능을 의심하는 단계는 이미 지나갔다는 거다. 재능이 있든 없든, 다초점 렌즈를 쓰는 나이에 와서 의심해봤자 무슨 소용인가. 쓸 수 있으면 쓰는 거고, 도무지 쓸 수 없는 때가 오면 그만 쓰면 된다.
그렇게 현실적인 고민과, 그럼에도 놓지 못하는 욕망과, 새 안경이 가져다준 기대와 함께 이 뉴스레터를 만들었다. 이 뉴스레터도 새로 산 안경 같은 것이다. 꼭 필요해서 하는 건 아니다. 그저 낯선 나를 한번 이전과는 다른 형식으로 써보고 싶었을 뿐이다. 나에게 뉴스레터는 그동안 해온 일을 새로운 방식으로 하는 것이고 재능의 유무와 상관없이 글을 쓸 수 있는 공간이다. 잘 어울릴지는 모른다. 혹시 데이비드처럼 새로운 인생을 찾게 되더라도, 다시 내가 좋아하는 안경을 잠시라도 쓸 수 있는 시간이 된다면 만족할 것이다. 어제와 다른 내가 조금 더 선명하게 보이기를 바라면서. 매주 월요일 오후 3시까지 마감하겠다. |
|
|
어느새 안경이 많아졌다. 아버지가 남긴 선글라스도 있고, 운동할 때 쓰려고 산 고글도 있다. 여자친구가 생일 선물로 사준 안경도 있다. 각각의 안경 케이스에 넣어 보관했는데, 어느 날 무지 매장에서 안경 보관함을 발견했다. 가격은 29,900원. 집에 놓고 쓸 플라스틱 보관함 가격으로 보기에는 비쌌다. 쿠팡에서 찾아보니 두께는 얇지만 가격이 7천 원대인 물건이 있었다. 그런데 이것도 비싼 거였다. 다이소에 가면 5천 원에 살 수 있다. |
|
|
|